Tuesday, March 8, 2011

이모

아버지 가신게 2년이 다 돼간다. 생존해 계실때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분 가시고 나니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엄청나게 금슬이 좋았던것을 알겠다.

국민학교 겨우 마친 어머니, 병약해서 평생을 고생하신 어머니를 얼마나 아끼고 살펴주셨는지 예전엔 생각도 못했다. 가끔 부부싸움 하시던 것이나 기억하고 있었으니...

아버지 가시고 나서 어머니는 모든 일에 흥미를 잃고 마음 둘 곳이 없어하신다. 그게 정도가 심하다. 벌써 2년여, 마치 중병에 드신듯 기운이 없고 입맛도 잃으시고 늘 우울해하시고 자주 슬퍼하신다. 얼마나 그리우시면...

그런분께 마지막 위안은 자식도 아니고 형제들이다. 세분계신 외삼촌, 그리고 한분뿐인 이모, 맏이였던 어머니께 제일 위안은 역시 가까이 사는 이모와 막내 외삼촌. 그분들을 만나시면 얼굴이 밝아지시는데...

이모는 어릴때 인천으로 나와서 평생을 차마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고생만 하며 사셨다. 미군부대 용역원이었던 이모부를 만나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셨다는데, 어릴때 한두번 겪어보니 왜들 반대를 하셨는지 나도 알겠더라. 조카인 우리들에게야 언제나 인자하게 웃으면서 잘 해주시지만 일단 술이 들어가면 어린 내가 보기에도 사람이 살벌해보였었다.

평생을 매맞고 사신 이모, 술에 폭력에, 제대로 된 직업이라고는 단 한번도 가져본 적 없는 건달로 살아오신 이모부. 말년에는 자식들도 장남은 분가해 나몰라라 하고 살고, 차남은 제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으니...막내인 딸하나가 신경쓰며 돌볼 뿐이다.

중풍으로 쓰러져 사람도 알아보지 못한것이 벌써 여러해, 그러나 이모는 병문안 간 아내에게 '그래도 원망보다 사랑을 더 많이 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고 하시더란다. 부부란 그런것이겠다. 곁에서 내 보기엔 아무리봐도 없는게 더 나을것 같은 사람인데 일흔이 넘은 이모의 애틋한 정은 상상하기가 쉽지않을 정도...

아침에 어머니와 식사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 휴대폰이 방에서 울린다. 얼른 달려가서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면서 보니 이모 전화다. 가슴이 철렁하다. 적십자병원에 들어가 계신지 몇달된 이모부. 돌아가신게로구나 하는 예감.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 목소리가 커지고 곧장 풀죽은 톤으로 변하고...그렇게 새벽에 가셨단다. 자고 깨어보니 죽어있더라고 하는데...하나뿐인 여동생도 남편을 여의고 혼자 된 셈이다. 아버지 돌아가신지 2년여, 자매가 둘다 과부가 되었다.

나이 일흔에 여든이 되신 분들께 과부란 말은 좀 어색하다고 생각했었다. 가실날 얼마 남지 않은 분들이 뭐...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 슬픔을 얼마 살지 않은 젊은 놈들이 어찌 헤아리랴. 그 사랑을 우리가 어찌 짐작이나 하랴...

이모부가 돌아가셨다. 평생을 건달패로 살고 지긋지긋하게 속만 썩이던 양반이지만 우리 이모 늘그막에 외로와서 어찌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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