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ugust 23, 2011

박카스 중독

대학4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짐싸들고 가출을 했었다. 그 겨울에 수안보에 틀어박혀서 약국 종업원 노릇을 몇달했었는데 벌써 기억도 가물가물 오래된 일들이라 이젠 무슨 동화책에서 읽은 이야기 같기도하고...

지금 수안보온천은 아주 멋있어졌더라. 그때만해도 건물이...세수할곳이 없어서 눈만 뜨면 온천으로 달려가야했다. 호강한 셈이다. 온천물로 매일같이 세수하고 목욕하고...

약국도 말이 약국이지 허름한 건물에 그야말로 구멍가게였고, 온천탕 있는 관광지였으니 당연히 제일 많이 나가는게 박카스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박카스야 약국으로서는 기피품목이라. 남는거 없고 쌓아둘 공간도 없고 가격은 혼란스럽고...그래서 예외없이 여기서도 대체품목을 팔아제꼈다. 동화약품은 알프스디 만들어서 자존심 많이 상했을거 같다. 겨우 대체품목으로나 나갔으니..그래도 기업이야 돈만 벌면 된다..이런 생각이었을까?

경험도 없고 아는것도 없는 사람이 뭘 알았으랴, 달라면 달라는대로 주라면 주라는대로 주고 돈이나 받은게지...그런데 동네에 박카스 중독자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있었다. 나는 무뎌서 전혀 알지 못했는데 농사짓는 분들이 늘 들러서 박카스를 꼭꼭 사서 먹고 가시곤 했다. 그러려니 했을뿐 달리 이상하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한참 추운 겨울날, 새벽6시에 약국문을 열고 난로를 피우고 청소를 하려면 손이 곱아서 비를 쥐는것도 쉽지 않고 귀가 얼얼하다. 그래도 금방 훈훈해지는 맛에 견딜만 한건데...전화가 왔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박카스 한박스만 갖다주세요' 하는 할머니 목소리.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또 턱없이 자존심은 세서 배달해 달라는 말이 정말 싫었는데  우리 주인은 전혀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배달을 시키곤 했다.

박카스라고 말해도 무조건 알프스를 주는건데 이번엔 달랐다. 박카스로 한박스 100병을 지고 가서 방안에 들여놓아줘야 한다는것이다. 거리는 그거 지고 10여분 정도였으니 먼건 아니었는데...

집에 도착해서 불러도 대답이 없다. 불은 모두 꺼져있고. 한겨울 새벽6시 조금 넘은 시간이니 캄캄한데 대체 사람이나 있는건가 싶다. 그래도 섬돌에 놓인 신발 두켤레 보고 그 방인가 싶어 문을 열었더니...

두분이 식은땀을 흘리며 이불덮고 누워계셨다. 겨울이라 한가한때라고는 해도 어르신들은 이미 일어났을 시간. 두분이 방에 불도 안켜고 나란히 누워서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는거다.
박카스를 문가에 내려놨더니 '그거 한병만 따 달라'고 하시고는 간신히 일어나 앉아서 그걸 드신다. 그리고는 잠시 후엔 두분이 모두 그럭저럭 일어나 불을 켜고 이불을 개켜놓고...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분들 중독이야~박카스 안먹으면 일어나지도 못해~ 가끔가다가 배달해드리곤했거든~' 이러신다 우리 쥔장...

어디에도 박카스중독 이야기는 없다...그걸 중독이라고 해야 하는건지, 정말 박카스 안먹어서 일어나지도 못한건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두분이 하루에 박카스 열병짜리 한박스 이상은 드신다고 했는데...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을게다. 그거라도 먹고 일어나서 농사일을 하셔야 했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

누가 있어서 그분들 건강관리를 해드렸겠나. 의사도 약사도 자녀들도, 아직 건강관리니 뭐니 하는 사치스런 놀이에 눈돌리지 못하던 시절이다.

그저 하루하루 약으로 때우고 견뎌내던 시절이고 그걸 팔아먹는게(?) 사명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지금이야 저런 분들 없겠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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