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얘기다. 아버지는 약사면허를 빌려셔 소위 '면대약국'이란 것을 하셨다. 나름대로 경험이 많았던, 요즘으로 말하면 '전문카운터'출신이셨는지라 약사는 면허만 걸어놓고 출근도 안했고 아버지는 '약사'소리를 들어가며 동네 유지로 행세하셨다.
잘되는 약국은 아니었으나 우리6남매, 그 덕에 배우고 , 먹고 , 입고 컸다. 그러니 내가 약사가 되어 '카운터척결'을 외치고 다니지만 우리 아버지를 비난할 생각은 전혀없고 그럴수도 없다. 그분에게 있어서 그게 최선이었다는걸 나는 안다. 지금, 어느 젊은이가, 혹은 학생이 나와 똑같은 소릴 중얼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그 시절에 아마도 지미카터씨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있었나보다. 우리는 학교에서 그 이름을 가지고 '지에미 카터''니미 카터' 등으로 부르면서 놀았는데 친여, 친미성향의 어른들은 그렇지 않은것 같아서 동네 아저씨들 별명이 죄다 '카터'가 되어있었다. '김카터''장카터''이카터'...뭔 일인지는 몰라도 우리 약국에 몰려와서 바둑두시고 보신탕 먹으러 다니시는 아저씨들 모두 카터였다.
그중에 김카터 아저씨가 계셨다. 뭐, 이런 저런 개인적인 평가는 접어두고라도 가까이 사시는데다가 그집 아이들도 우리들과 비슷한 또래였던탓에 더 친근하게 느껴졌던것 같다. 하긴 뭐, 동네 어른들 대여섯분이 친근하게 지내셔서 같이 여행도 잘 다니시고 늘 모여서 바둑에 정치얘기에 끝이 없었다.
그 김카터 아저씨의 또다른 별명이 판피린 김. 종합감기약 물약인 판피린을 하루 10병을 마신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는데 이건 정작 우리들 외엔 알지도 못하는 별명이었다. 그럴 수 밖에, 약국에 있는 사람 아니고야 그게 뭔지 알기나 했겠나?
하루10병의 판피린. 동아제약은 아마도 카페인갖고 성장해온 거 아닌가 싶을정도로 박카스와 판피린은 절대강자였는데 이 아저씨는 두통에도 판피린, 기침에도 판피린, 콧물에도 판피린, 피로에도 판피린이었다. 물론 박카스는 피로회복제로 따로 드시고...근데 묘하게도 박카스는 그렇지 않은데 판피린에만 인이 배겨서 늘 그걸 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는거다.
아버지가 단단히 타이르고 협박하고 애원을해서 판피린을 끊어보겠다고 하셨단다. 그리고 근 일년이 넘는 기간동안에 그 아저씨, 무지하게 노력을 하셨다. 하루도 안빼고 만나는데다가 가까이 사시는 분이고 친한 분이니 아버지가 관리도 잘 해주셨지만 끊어야겠다는 지독한 결심이 없으면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그 아저씨, 사람 순하고 흐리터분하게 생기셨는데 생각보다 강단있는 분이었나보다.
일년. 내가 그거 왜 이렇게 뚜렷이 기억하는지 모르겠다만...일년만에 판피린 하루10병이 하루1병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아저씨의 한탄 '이거 한병은 도저히 못줄이겠네...'...아마도 아버지가 더 잘 관리해드렸으면 잘 됐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내 식구도 아니고 환자를 대하는 의사도 아니고...결국 그 아저씨 혼자의 의지로 그렇게 고생하셨던건데...
그후에 그 아저씨가 그 한병을 마저 줄여서 아주 끊어버리셨는지 어땠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미 30여년이 훌쩍 지난 옛날 일이다. 그 무면허 약사의 약국집 아들은 지금 약사가 되어 약국에 있고, 김카터 아저씨의 딸이 약사가 되었다. 그 사위도 약사를 맞았다.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그 아저씨는 아직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다.
아마도 이런 저런 도움으로 끊으신거 아닌가 싶다. 그러니 지금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는거 아닐까? 그 딸도 약사 되어 내 가까운곳에 있고 그 사위도 친하게 아는 사람이지만 이런 이야기 드러내어 하지 않는다. 나만 갖고 있는 추억이랄까?
그때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 진짜 약사님이었다면 어쨌을까? 조금 더 쉽게 성공하셨을까? 면허가 아니라 '사람됨'이고 '애정'이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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