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세분의 누나가 계시는데 제일 큰누나는 스스로 어머니처럼 자신의 위치를 설정한채 사시는것 같다. 그게 스스로의 의지로 된 것이랴, 우리 모두의 '큰누나'들이 자연스럽게 살아온 모습이겠지...
둘째누나는 참으로 특색없이 평범하게 산다고 여겼는데 나이가 들고보니 그게 오히려 더 정답고 친근하다. 늘 웃고, '같이 걱정하는' 친구같은 누나가 둘째누나
그리고 나보다 두살 더 많은 세째누나가 있다. 아마도 나때문에 제일 많이 피해(?)를 입은 분일테고, 같은 시기에 고등학교를 다니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입시생 노릇을 했다
큰누나나 둘째누나가 보기에 참 철없는 동생이었다고 하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다. 공부도 잘하고 큰아들인 남동생이 바로 밑에서 자라고있는데, 형편도 좋지못한 집에서 '너까지 대학 보낼 수 있겠느냐. 아예 포기해라' 는 소리를 자매들끼리 했었던 모양이다.
벌써 수십년 전의 이야기들이다. 남동생 공부시키는걸 희망이라고 착각하며 살기도 하던시절,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은 꿈을 꾸게되었던 그런 시절 이야기다. 갈등도 많고 억울함도 넘쳤을게다. 더구나 그때쯤 아버지 사업은 실패로 끝이났고 빚쟁이들 피해 야반도주만이 해결책으로 다가서던 시절...
그래도 누나는 지독히도 공부에 매달렸다. 나도 입시공부 하던 처지였지만 그 어린 마음에도 '우리누나 지독하다'싶을정도로...
그리고 그 후의 일을 나는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건가? 모를리가 없었을텐데 나는 세째누나의 대입시험과 그 후의 일의 진행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있다. 그저 지독하게 공부해놓고 나를 생각해서 포기하셨지...정도의 넋두리로 그 후의 상황을 설명하곤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 기억은 왜곡되고 빠져버린 부분이 꽤 많다. 누나들이 모두 인터넷을 할수있게되고, 내가 쓴 글들을 읽고 기억을 되살리기 시작하면서 실은 내 기억이 엉망으로 편집되고 잘못되어있다는걸 지적하기 시작했던것이다
세째누나. 청주교대라고했던가? 대학에 당당히 합격했었다는걸 얼마전에야 어머니께 들었다. 그 학교가 맞나? 잘 모르겠다. 요즘은 기억력에 자신이 없다. 어쨌거나 수능시험만 보고 본고사가 없어진게 나부터였으니 누나는 본고사에 면접까지 봐서 합격했다는 소리일테다.
그러나 대학에 가지 못했다. 등록금이야 어떻게 마련해본다고 하더라도 하숙이라도 해야하는데 그걸 유지할 여력은 없었다..는게 어머니 말씀. 무지하게 억울해하시는데... 이제와서... 늘 그렇다. 그때 조금만 더 맘 독하게 먹었으면...면껄병이라는거다. 운명은 늘 이런식으로 사람을 놀려대길 좋아한다
그리고의 힘든 삶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세탁소를 한다고 몇년 살다가 천식이 생겨나서 기침한번 시작하면 곧 숨이 넘어갈듯하고 온몸에 힘이 다 빠질때까지 캑캑거리는것같다. 매형이 사람이 보통 좋은게 아니어서 늘 누나를 도와주고 살펴주는데 우리누나, 성격은 또 불같고 쇠꼬챙이같아서 옆에서 보기가 민망할정도...
아들하나 있는걸 잘도 키워내셨다. 새벽 두시까지 주유소 알바를해서 돈을 번다고 하더니 그리 번 돈으로 호주유학을갔다. 거기서도 돈벌어가며 공부를한다니 생각할수록 자식 키워내는 능력들이 부럽기만하다
이제 나이들어 쉴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자식놈 걱정에 앉아있기는 힘든 모양이다. 건강도 맘같지않으니 지방으로 내려가 일자리 찾아 일하면서 살겠다고 아산에 집을 구해놓으셨다. 매형은 직장 사표내고 거기가서 아무일이던 하겠다하고...
나는 엉뚱한게 걱정이다. 아버지 먼저보내고 마음 잡지 못해 우울증 비슷하게 움츠려들기만하던 어머니 , 누나가 반강제로 끌고다니며 병원에도 가고 자기 작업장으로 늘 모시고 다니면서 말벗이 돼 주었었는데 이제 그분이 떠나면 우리 어머니를 어쩌나...
아버지가 사놓으시고 큰아들과 손녀딸이 있는 여기만이 내가 있을곳이라고 굳게 믿는 우리 어머니. 작은아들이 좋은집 샀으니 하루 주무시고 가라해도 '내가 우리집 놔두고 왜 여기서 자느냐' 고 굳이 내게 데리러오라고 전화하시는 분, 막내아들 섭섭해한다고 해도 꼼짝도 않으시던 분이 어느날 '세째누나가 나하고 같이 내려가 살자는데 가도 되겠냐?' 하고 말을 건네시더라. '나는 좋지요!' 짐짓 큰 소리를 내며 웃었지만 세째누나가 정말 마음을 모시는 효녀였구나싶어 가슴이 저려왔었다
일정이 앞당겨져서 한 이십여일 후엔 내려가시게되었다. 둘째누나 해남으로 가셔서 늘 아쉽고 허전하더니 세째누나는 아산이다. 해남보다야 가깝기가 내집 앞마당같기는 하다만...
다른거 다 제쳐두고 거기가서 기침이나 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 모두 희생하셨으니 내가 돈많이 벌어서 모두들 모여 가깝게 정을 나누며 살게해드리면 좋으련만..그저 크게 폐나끼치지말고 살자고 조심하는 형국이니 나도 못나기는 참 지독히도 못난 놈이다...
Friday, October 28, 2011
세째누나
Subscribe to:
Post Comments (Atom)
0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