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녀석이 수능 치른지 얼마 되지 않는다. 점수가 나오긴했는데...엉망이다. 내가 봐도 엉망이다. 시험 공부를 꾸준히 해왔고, 조급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었는데...학원을 두어달 전에 끊고 혼자하겠다고 집에 있었던게 아마도 공부시간보다 게임시간을 더 늘렸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나는 녀석을 믿고 있고, 그래서 시험성적이 나왔다고 했을때도 일단 '실망하지 말아라'부터 이야기했다. 녀석은 또 그런대로 견뎌내는 모양이다. 경기도쯤에 갈만한 수준의 학교가 있는지 알아보는 중이라니 '네가 판단해서 해라'고 웃는것으로 애비노릇을 마치려 한다.
수능이 끝난다고 해서 학교까지 끝난건 아니니 매일 아침 녀석을 태우고 등교시키는 일이 아직은 소중한 일상으로 남아있다. 오늘 아침 일이다.
빨래를 개다가 말고 어머니가 탄식을 하신다. '이걸 어쩌냐~' 가 보니 녀석의 교복 바지가 엉덩이 부분이 양쪽 다 삭아서 섬유가 튿어져있다. 이미 한부분이 그리 되어서 세째누나가 짜집기해서 입힌 것인데 그 바지가 편하다고 계속 그것만 입었었다.
대체 이걸 어쩌나? 바지가 하나 더 있었던 모양이다. 작고 불편해서 안입던 바지가 있다고 하니 일단은 그걸 입으라고 하고 튿어진 바지는 수선집에 맡기자고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참...바지를 1학년 입학할때 사준것이었던가? 3년을 입었나? 치마입기 싫다고 남들 치마입을때도 바지만 입는 녀석이니 꼬박 3년을 말없이 입었던가? 아닌가? 중간에 한번 사주었었나? 하여간에 지독한 녀석이다.
'저리되기 전에 이야기를 해야지!' 했더니 '할머니한테 얘기했어~'하고 웅얼거린다. 작은 바지 불편하게 입었다고 불평하는 녀석도 아니고 바지 해졌다고 안달내는 녀석도 아니다. 어머니는 아마도 듣고도 잊어버리신 모양이다. '다음부터는 아빠에게 얘기해라' 나도 얼버무리고 대화를 끊는다.
하루종일 마음에 걸린다. 그 바지, 무슨 녀석이 집에서도 교복바지를 입는지...바지 하나 가지고 대체 얼마나 오래 입은건지...다른 아이들은 옷사달라고 생떼도 쓰고 난리를 치더구먼 이놈은 여고생이 돼가지고 이게 뭔 일인지...
바지야 내일 찾아다 입히면 될 일이겠으나 그래도 명색이 여고 졸업반 아가씨가 세군데나 짜집기 크게 한 바지를 입고다닐 생각을 하면 참 내가 다 낯뜨겁다. 그것도 엉덩이에 사타구니에...
소박하고 털털한건 좋은데 이왕이면 새로운 기기, 컴퓨터에 대한 욕심도 그리 없었으면 좋겠다....아마도 그건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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